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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말이라도 내가 퍼올린 나의 언어를 꺼낼 때 시작되는 것 -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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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 2026-09-27

 

누군가와 마음이 통해 점점 가까워지는 순간은 따뜻하고 설레는 일이지만 그 관계가 깊어질 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는 서서히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상대가 싫어진 것도 아니고 관계를 끊어내고 싶은 것도 아닌데도요. 가까워질수록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바짝 다가앉는 상대방 앞에서 자꾸만 슬쩍 뒤로 물러서고 싶은 걸까요? 아마도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나의 꾸밈없는 모습,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촌스럽고 못난 감정까지 드러나기 때문은 아닐까요. 내 밑바닥까지 온전히 보여주었다가 혹시 거절을 당하거나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에게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다 보면 나는 사라지고 말 것 같은 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패를 찾는데 바로 세상에 이미 잘 정리되어 있는 근사한 남의 말 뒤로 숨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우울, 불안, 사랑, 그리움은 책 속에 근사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미 말해진 언어로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깔끔하고 완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듬어진 남의 말을 앞세우면 내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과 적당히 안전하고 우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제된 남의 말에 숨듯 스즈키 유이의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주인공 히로바 도이치 교수는 평생 대문호 괴테의 문장을 연구하며 괴테의 완벽한 문장 뒤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던 도이치 교수는 홍차 티백 꼬리표에 적힌 출처를 알 수 없는 괴테의 명언 한 줄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고 한데 섞는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모르는 문장의 출처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집요하게 출처를 확인한 끝에 그 문장이 전집에 존재하지 않는 출처 불명의 문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방패가 무너져 내렸고 괴테라는 거인의 불완전성에서 오히려 가벼움을 느낍니다.

 

늘 책에 몰두했던 도이치 교수는 완벽한 괴테의 문장에 숨는 것을 멈추고 가족들과 평범한 대화를 나눕니다. 완벽한 괴테의 문장은 도이치 교수와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었지만 출처조차 없는 문장이 그를 사람들과 섞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마주합니다. 책 속의 문장을 알아내고 온전히 이해하는 것과 생활 속에서 서투른 모습으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점입니다.

 

문득 내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정말 나의 말은 얼마나 될까를 고민해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이 남의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말이라도 내가 어떤 사람을 보며 꺼낸 순간 그 말은 나의 언어가 됩니다. 나의 언어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말을 내 삶 속에서 다시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내가 어떻게 살아내느냐입니다.

 

어쩌면 가까워진다는 것도 완벽한 문장을 찾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사용되어 이제는 새로울 것 없는 세상의 말을 내 삶에서 말해보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이미 있는 정리된 문장보다는 설명되지 않는 내 마음을 어설프고 평범한 말일지라도 지금 내 안에서 퍼올려 건넬 때, 세상의 문장이었던 그 말은 비로소 나의 언어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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