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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 가족의 조호부담에 대한 정신역동적 고찰. Psychodynamic Insights into the Caregiver Burden of Families of Patients Living with Demen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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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종 2026-09-21



서 론


치매의 병인을 규명하기 위한 뇌신경 분야의 눈부신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치매 환자 돌봄 가족에 대한 정신역동적 이해는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왔다. 치매 돌봄 연구는 환자 가족의 경험을 '돌봄 부담(caregiver burden)'이라는 양적 척도로 번역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척도로는 '왜 이 가족은 유달리 빠르게 무너지는가'에 답할 수 없었다. 이는 돌봄 부담의 양이나 크기보다 그 부담을 마주하는 가족들의 심리내적 지형의 차이가 더 중요함을 시사한다. 본고에서는 치매 환자 가족의 조호부담 기저에 자리 잡은 정신역동의 네 가지 축을 고찰하고자 한다.


유년기 갈등과 외상의 재활성화


치매 환자의 정동은 매우 불안정하다. 치매 환자의 약 75%가 최소 한 가지 이상의 행동 심리증상을 보이며, 그중 무감동, 우울, 초조 및 공격성이 가장 흔하다(Lyketsos 2002). 환자가 배출하는 견딜 수 없는(indigestible) 정동은 가장 가까운 타인에게 투사된다(projected). Anderson(2010)은 환자 가족이 투사의 짐을 지되 그것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하는 '거의 불가능한 과제'를 지적하며, 그 투사가 흔히 가족 내면의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에 걸린다(hook)고 기술한다. 그것은 그들의 부모를 향해 반복되었던 감정들을 격렬하게 깨우고, 때로는 오래된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재점화한다(Wylie & Wylie, 1987).

'걸린다'는 Anderson의 표현은 투사된 감정이 아무 데나 자리 잡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져 있는 상처에 걸린다는 의미에 가깝다. '네가 내 돈을 가져갔지'라며 자신을 때리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대할 때, 그녀와 건강한 관계에 있던 자녀는 이를 병의 증상으로 인식하며 중립적이고 지지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자녀는 이를 자신을 불신하고 학대했던 외상적 기억의 강렬한 반복으로 느낄 것이다. 후자에 있어서 치매는 새로운 갈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묵은 갈등에 병리적 정당성을 부여함

으로써, 환자 가족의 적개심과 좌절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세대의 역전: 우울 자리의 상실과 담아주기의 전가


우울 자리(depressive position)는 한 대상 안에 사랑과 미움이 함께 있음을 견디고, 회복(reparation)하며, 죄책감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로서 상당한 수준의 인지적·정서적 여유를 요구한다(Klein, 1940, 1946). 치매는 그러한 여유를 잠식하며, 우울 자리의 비가역적인 상실을 유발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환자가 수행하지 못하는 통합 기능은 가까운 가족에게 전가된다. 상당수의 가족은 '대리 자아 방어(proxy ego defence)'로서 기능하는 듯 보이나, 때로는 소진되어 스스로 편집-분열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로 전복되기도 한다(Anderson, 2010).

치매 환자의 돌봄 부담을 주로 그 자녀가 맡게 될 때, 이러한 기능의 전가는 발달적 사건과 겹친다. 영유아기에 부모에게 공생적으로 의존했던 자녀가 이제는 중년이 되어 부모의 책임을 떠맡는 발달적 과업에 직면하게 되는데, Colarusso(2000)는 이를 '세대의 역전(reversal of generations)'으로 명명하였다. 그가 인용한 Joan Fleming의 기술 —"어느 한쪽이 공생 관계의 벡터의 역전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분리개별화 과정은 탈선하거나 미완으로 남는다" — 은 치매 환자의 돌봄 부담에서 비롯되는 가족 갈등을 단순한 적응

의 실패가 아니라, 발달 과제의 탈선 혹은 불균형(disequilibrium)과 그에 대한 적응(adaptation)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편집-분열 자리에 있는 환자의 내적 세계는 환자의 지지 체계망으로 확장되어, 그 가족들을 '헌신적인 가족'과 '무심한 가족'으로 가른다. 이러한 가족 구조의 경직성은 환자 내면의 분열(splitting)이 지닌 강도는 물론, 이를 담아내지(containing)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저항의 강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보는 가족 자신의 유한성: 죽음 불안과 의도된 무자각


치매 환자의 자녀들은 대부분 그들 스스로의 중년기 위기 안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Colarusso와 Nemiroff(1979)는 중년기 위기가 시간의 유한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수용함으로써 촉발된다고 보았다. 이들은 부모의 죽음이 유년기 내사물의 이완을 초래한다고 기술하였는데, 치매에서는 이 과정이 부모의 죽음 이전에, 훨씬 오래 지속되는 형태로 시작된다. 부모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잊을 때, 부모의 품 안에서 근원적이고 지속적인 안전의 감각을 내면화했던 유년기 내사물은 이완될 위험을 맞이하고, 자신도 부모처럼 죽으리라는 인식과 함께 홀로 남겨지는 듯한 불안과 맞서야 한다. 이 불안

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은 그 실존적 불안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운다.

Jaques(1965)가 죽음의 불가피성과 자기 안의 증오를 나란히 놓았듯, 중년의 자녀는 다음의 두 마음을 동시에 마주한다 — 자신도 결국 저렇게 될 것이라는 인식과, 차라리 죽음으로써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소망을. 후자의 소망이 불러일으키는 가해자적 불안(predator death anxiety; Langs, 2008) — 나는 이 사람의 죽음을 바라고 있고 벌을 받아야 한다 — 은, 환자와 그 가족 자신의 유한성, 생생하게 다가오는 죽음이 촉발한, 보다 강력한 실존적 불안에 대한 방어일 수 있다.

임상가가 치매 환자 초진 당시 인지저하가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보호자는 증상이 거의 없거나 경미하다 보고하는 경우들이 많다. 알츠하이머병의 자연 경과를 재차 교육함에도, 여전히 진단 자체를 부인하고 완치를 치료 목표로 하는 가족들이 있다. 가족의 이러한 반응 역시 단순한 지식의 결여라기보다 근원적 죽음 불안에 대한 의도된 무자각(motivated unawareness)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는 정보나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아는 것, 생각하는 것(knowing & thinking)이 초래할 결과 — 부모의 죽음, 자신의 미래, 무기한의 돌봄 — 를 알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작업이다.


특수한 애도 과정: 현존하는 부재


Freud(1917)는 「애도와 멜랑콜리아」에서 정상적인 애도 작업이 현실 검증(reality-testing)이 사랑하는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데서 시작된다고 썼다. 그러나 치매 환자를 대하는 가족들에게 있어 대상은 눈앞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곳에 없다. 즉 애도 작업의 출발 신호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Boss(1999, 2010)는 이처럼 사랑하는 이가 신체적으로는 현존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부재할 때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의 상실을 모호한 상실(ambiguous loss)이라고 하였다. 상실된 대상은 여기 있으면서 여기 없고, 애도는 얼어붙으며, 삶은 멈춰서고, 결국 사람들은 외상을 입는다.

Lindemann(1944)은 대상의 상실 이전에 애도가 시작되는 예기 애도(anticipatory grief)에 대해서 논의한 바 있다. 이는 상실이 도래하면 종결됨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그 대상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아의 기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치매 환자 가족의 애도와는 차이가 있다. 치매 환자의 가족이 환자와의 사별 전까지 겪는 특수한 애도의 과정은 예기 애도와 마찬가지로 사별에 시간적으로 선행하지만, 대상의 현존 하에서 대상의 부재를 점진적으로 생생하게 마주하는 모순적이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란 점에서 예기 애도와 구별된다.

Kernberg(2010)는 애도가 상실한 대상과의 지속적인 대상관계의 내면화, 떠난 이의 가치 체계와 삶의 기획을 내면화하는 초자아의 변형, 그리고 초월적 가치 체계를 향한 영적 지향성의 획득과 같은 정신구조의 영구적 변형을 이룬다고 하였으며, 상실한 대상과의 이러한 영구적 내적 관계를 Sara Zac de Filc의 표현을 빌려 '부재하는 현존(an absent presence)'이라 하였다. 이러한 사별 이후의 심적 성취를, 치매 환자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이전부터 강제로 겪게 된다. Kernberg의 부재하는 현존은 물리적으로 부재하는 대상이 내면에 살아 있는 상태인 반면, 치매 가족이 겪는 것은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대상이 내면에서 죽어 가는, 즉 "현존하는 부재(a present absence)"라 명명할 수 있을것이다.

이는 André Green(1980)이 기술한 '죽은 어머니(dead mother)' — 살아 있으나 심리적으로는 부재하는 어머니 — 와 그에 대한 '텅 빈 애도(blank mourning)'와 구조적으로 닮아있다. 다만 Green의 죽은 어머니가 유아기에 겪는, 회복 가능한 어머니의 우울에서 비롯된다면, 치매 가족이 마주하는 부재는 성인기에 비가역적이고 진행성인 기질적 과정에의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떠난 이의 삶을 이어받으라는 명령(mandate)의 내면화와 이어지는 도덕적 성숙은 대상의 삶이 종결되었을 때에야 가능하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가족에게는 이어받을 기획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그 기획의 주인은 더 이상 그것을 말할 수 없다. 가족들은 이 과제를 현존하지만 부재하는 대상의 눈앞에서 마주해야하는 역설적이고 버거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결 론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정신역동을 이루는 네 축은 하나의 연쇄를 이룬다. 유년기 갈등이 되살아나는 상태에서 담아주기가 역전되고, 그런 역전을 감당하는 동시에 자신의 유한성과 마주하며, 그 모든 것이 쉽게 완결될 수 없는 애도의 장 안에서 이루어진다. 고통은 환자-가족, 두 사람 사이를 순환하며 임상가가 개입해야 하는 지점은 순환의 어느 한 끝이 아니라 순환 그 자체이다. 가족 개입의 일차 목표는 정보 제공이 아니라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더라도 관계가 파괴되지 않는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며, 지난한 애도의

과정을 혼자 견디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Anderson, D. (2010). Love and hate in dementia: The depressive position in the film Iris.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91(5), 1289–1297.


Boss, P. (1999). Ambiguous loss: Learning to live with unresolved grief.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Boss, P. (2010). The trauma and complicated grief of ambiguous loss. Pastoral Psychology, 59(2), 137–145.


Colarusso, C. A. (2000). Separation-individuation phenomena in adulthood: General concepts and the fifth individuation. Journal of the 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 48(4), 1467–1489.


Colarusso, C. A., & Nemiroff, R. A. (1979). Some observations and hypotheses about the

psychoanalytic theory of adult development.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60(1), 59–71.


Freud, S. (1917). Mourning and melancholia. Standard Edition, 14, 237–258. London: Hogarth Press.


Green, A. (1986). The dead mother. In On private madness (pp. 142–173). London: Hogarth Press. (Original work presented 1980.)


Jaques, E. (1965). Death and the mid-life crisis.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46(4), 502–514.


Kernberg, O. F. (2010). Some observations on the process of mourning.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91(3), 601–619.


Klein, M. (1940). Mourning and its relation to manic-depressive states.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21, 125–153.


Klein, M. (1946). Notes on some schizoid mechanisms.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27, 99–110.


Langs, R. (2008). Unconscious death anxiety and the two modes of psychotherapy. Psychoanalytic Review, 95(5), 791–818.


Lindemann, E. (1944). Symptomatology and management of acute grief.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01(2), 141–148.


Lyketsos, C. G., Lopez, O., Jones, B., Fitzpatrick, A. L., Breitner, J., & DeKosky, S. (2002). Prevalence of neuropsychiatric symptoms in dementia and mild cognitive impairment: Results from the Cardiovascular Health Study. JAMA, 288(12), 1475–1483.


Wylie, H. W., & Wylie, M. L. (1987). The older analysand: Countertransference issues in psychoanalysis.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68, 34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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