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환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분석가의 말에 대한 두가지 관점: 서사적 진실과 저항 분석. What makes the analyst’s words touch the patient’s mind? : Narrative truth and Resistance analysis

이창훈 2023-07-23


초 록

환자의 마음에 보다 더 닿을 수 있는 말을 하기 위한 고민은 모든 정신분석가들의 숙명이다. 분석가의 말이 환자의 심리적 현실과 동질적일수록 환자의 마음에 잘 스며들겠지만, 그런 말은 환자의 심리적 현실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환자의 심리적 현실에는 이질적이지만 만약 그 해석이 환자의 마음에 닿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환자의 심리적 현실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심리적 현실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돕는 것이 분석가가 하는 일이 아닌가? 어떻게 환자의 심리적 현실과는 이질적인 분석가의 해석이 환자의 마음에 잘 닿게 할 수 있을까? 나는 환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분석가의 말에 대한 두 관점을 구분하고 비교할 것이다. 이 두 관점은 대조적이다. 첫번째는 환자의 마음에 잘 닿기 위해서 치료자의 해석은 환자의 마음에 동질적이면서 서사적이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두번째는 환자의 마음에 이질적이지만 환자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해석이어야만 정신분석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관점이다. 나의 증례를 통해 이 두 관점을 비교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환자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해석을 하기 위해서 프로이드의 구조이론과 저항에 대한 개념이 왜 중요한지를 되짚어볼 것이다.

 

키워드 : 해석, 저항, 서사적 진실, 심리적 현실, 이질적

 


환자에게 뭔가 이야기하려고 할 때,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내 말이 환자의 마음에 들어가려고 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마치 세포막이 세포를 감싸고 있듯이 환자의 마음도 어떤 막으로 싸여 있어서 내 말이 그 막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 막의 수용체에 딱 들어맞는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생각은 오래전부터 나에게 있었다. 환자 마음의 막을 부드럽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분석가의 말에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그것을 갖추지 못한다면 분석가의 말이 환자 마음에 닿을 수가 없을 것이기에, 환자와 분석가의 대화는 무의미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효과적인 해석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분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것, 궁극적으로 정신분석적 진실이 무엇인가 까지를 아우르는 매우 방대한 연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환자의 마음에 잘 닿을 수 있는 분석가의 말에 대한 두가지 관점을 구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서로 다른 이론적 배경을 가진 정신분석가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는 ‘어떻게 해야 나의 말이 환자 마음의 중심부에 가서 닿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분석가의 말이 환자 마음의 중심부에 닿는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환자 마음의 중심부란 겹겹이 싸고 있는 모든 방어층을 통과하여 이르는 환자의 정신 구조의 근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곳에 닿는다는 것은 그 영역에 영향을 미쳐 좋은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프로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자아에 이로운 변화를 일으킨다(it brings about an advantageous alteration of the ego…; Freud 1940, p179)”고 말할 수 있겠다. 프로이드는 환자의 방어를 저항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환자가 방어벽을 포기하고 열도록 이 저항을 끈질기게 분석하는 것을 정신분석의 목표로 두었다(Freud 1936, Busch 2014). 그러나 겹겹이 싸고 있는 모든 ‘방어층’을 통과하는 문제, 즉 저항을 끈질기게 분석하는 문제에서 분석가들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환자는 자신만의 심리적 현실을 지키기 위해 겹겹이 방어벽을 쌓고 있기 때문에, 분석가의 말이 자신의 심리적 현실을 흔들 위험이 있을 때는 철저하게 막게 마련이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정신분석가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방어, 저항 이런 것을 다 잊고, 정신분석의 모든 것은 단지 서사적 진실에 바탕을 둘 뿐이라는 혁신적 발상을 하게 된 것이다(Wallerstein 1982). 이는 과학주의에 대한 반성과 회의로 인해 발달해서 20세기 초 서양문화를 휩쓸었던 현대해석학의 영향이 크다(Gedo 1997). 스펜스(1982)는 구조이론이나 무의식에 관한 이론과 같은 정신분석의 이론들부터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모든 것들(저항, 무의식, 꿈, 전이 등)은 단지 “서사적 진실”의 일부이며 객관적인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을 탐구하는 정신분석은 결코 역사적(과학적) 진실을 추구할 수 없다. 정신분석적 해석은 과학적 사유로서 타당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서사"를 만드는 것이며, 정신분석의 목적은 환자가 자신의 삶을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주장은 시대와 문화의 요구에 영향을 받고 있던, 또 환자들의 저항 앞에서 좌절하던 정신분석가들에게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현재 그린버그(2015)와 같은 분석가들은 정신분석 자체가 허구로 이루어졌고, 정신분석의 치료적 요소는 그 허구를 통제하는데 있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환자의 서사를 확장시킬 목적으로 하는 해석은 환자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었고, 정신분석가들은 환자들과 쉽게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환자가 “나의 부모님은 내가 최우선이 아니었어요. 항상 자기들이 우선이었고 나는 그들의 트로피 같은 존재였어요”라고 자신의 서사를 이야기할 때, 분석가는 환자와 좀더 대화를 이어간 다음, 이렇게 더 확장된 서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도 헌신적으로 당신을 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 같네요. 그들의 트로피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망가뜨려서 그들의 트로피를 부숴뜨리는 게 덜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그러면 환자는 “맞아요! 그게 바로 내가 나를 망가뜨리는 이유인 것 같아요”라고 이 확장된 서사를 환영하며 받아들인다. 이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정신분석가는 환자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공감적이면서도 옳은 해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환자의 자기파괴적 행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고 환자는 이에 대한 이해를 한 것 같이 보인다. 한때 나는 이러한 서사적 진실을 바탕으로 한 서사적 해석이 환자 마음의 막을 부드럽게 통과하여 마음의 중심에 닿을 수 있게 하는 요소라고 믿었다. 이것이 환자 마음의 방어벽을 쉽게 뚫고 환자에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즉 환자의 저항을 극복하게 하는 매우 유용한 열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나는 큰 그림을 못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사적 해석이 환자의 마음에 쉽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은 맞으나, 저항이 극복된다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즉, 위의 예에서 보면, 환자가 자기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의 심리적 현실이 전혀 변화하지 않고도 환자가 이해는 할 수 있다. 이 환자는 자신의 행동이 자기파괴적이라는 깨달음보다는, 자신의 자기파괴적 행동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믿는 자신의 심리적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 같다. 스펜스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서사”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그럴 듯하고, 친숙하며, 자주 일어나는” 이야기라면 나름의 진실을 품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펜스(1982). 그러나 나와 주변 동료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환자의 심리적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으려면, “그럴 듯하고, 친숙하며, 자주 일어나는” 정도의 이야기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서사적 해석은 환자의 마음과 동질적인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쉽게 환자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저항을 극복한다는 것은, 막 비유를 사용하자면, 그 막의 수용체 자체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환자의 마음에 이질적인 해석이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동질적인 것만 받아들이던 수용체가 이질적인 것도 받아들일 수 있게 변화되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중요한 저항에 대한 작업, 저항 분석에 대한 연구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Busch 2014). 그레이(1982)는 프로이드가 저항의 완고함을 표현한 것을 빌려, 분석가들 역시 저항 분석 -저항을 인식하고 개념화하는- 에 대한 저항이 있다고 완곡하게 지적했다. 아마도 그는 저항 분석과 철저 작업을 잊고 정신분석의 모든 것이 서사의 일부라는 해석학적 관점으로 쏠리는 분석가들에게 일침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환자 마음에 깊이 닿을 수 있는 치료자의 해석에 대한 정신분석가들의 관점이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번째는 서사적 해석과 같이 환자 마음에 동질적일수록 환자의 마음에 깊이 닿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이것은 환자가 바로 받아들이지만 그의 심리적 현실에 변화를 만들어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두번째 관점은 환자가 변화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분석가의 해석이 필연적으로 환자의 심리적 현실에는 이질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질적이면서도 환자의 저항에 변화를 일으키고 환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해석이어야만 진정으로 환자의 마음에 깊이 닿을 수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두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대정신분석에서 서사적 진실과 서사적 해석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고, 이로 인해 정신분석의 핵심이 많은 정신분석가들의 관심에서 잊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Blass 2015). 해석학적 정신분석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쉐이퍼(2005, p62)는 자신의 임상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이렇게 말했다.

“정신분석적 개입은 환자의 서사를 개작(retelling)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 이로운 분석적 변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어떤’ 약속을 할 수 있는데, 이 변화는 자아가 갈등을 다룰 수 있게끔 준비시키는 깨달음(insight)과 철저작업(working through)에 의해 이루어진다. 내적 갈등의 서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이론적, 기법적 부작용에 대해서는 경계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환자의 서사를 개작(retelling)하여 내적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여전히 선호한다 (Schafer 2005, p62, ‘  ’저자 삽입)”.

나의 편견일지 모르나, 그의 문장에서 서사적 해석이 환자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약속을 미묘하게 보류하면서, 깨달음과 철저작업에 그 책임을 미루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에 대한 깨달음인지, 무엇을 철저작업해야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아서 사실상 어떻게 변화가 가능한지 설명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간접적이기는 하나 서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이론적, 기법적 부작용이 잠재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글은 역설적이게도 서사적 해석을 통해서는 깨달음과 철저작업이 어렵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처럼 들린다. 서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때 우려되는 부작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프로이드의 구조이론이 의미를 잃게 되고, 갈등, 저항의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정신분석은 치료가 아니라 두 사람간의 특정한 양식의 대화가 될 뿐이다.

이제 증례를 통하여 두 관점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 글은 두가지 다른 관점의 해석을 구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그 이상의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다음 증례는 저자가 분석치료한 환자의 증례이며, 발표하도록 허락해준 환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A의 분석 증례

A는 나와 6년째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 증례는 4년째 분석의 상황이다. 분석을 시작할 당시, A는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에 비해서 훨씬 심한 부적응 상태였다. 처음 2년간은 A의 분석이 성과가 있다고 느꼈다. 아마도 분석의 틀이 혼돈에 빠진 A를 붙잡아주는 효과가 있었기에 A의 일상에 상당한 안정이 찾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 더 이상의 진척은 없다고 느꼈다.

그 기간 동안 A의 분석에서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잦은 결석과 오랜 침묵, 그리고 현란한 서사로 이루어진 대화이다. 나는 A의 결석과 침묵, 그리고 꼼짝달싹 하지 않는 저항에 점차 지쳐갔지만, A가 새롭고 흥미로운 서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다시 기운을 얻어 희망을 가지곤 했다. 새로운 서사를 함께 창조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목표라는 해석학적 정신분석의 관점을 믿고 싶었다. A가 새로운 서사를 내놓으면, 나는 희망을 걸고 그 서사를 확장해서 돌려주었다. 물론 A는 나의 해석을 잘 받아들였고,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현을 하곤 했다.

그러나 A는 얼마 못가서 또 결석하거나 침묵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상당히 퇴행하는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돌이켜보면 당연했던 것인데, 당시에는 A가 왜 이토록 치료에 저항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A의 서사와 내가 돌려주는 해석이 A의 심리적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어서 A에게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분석 4년째인 어느 날 A는 연달아 며칠을 결석한 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마치 한 마리의 새인 것 같아요. 그런데 땅에 떨어져 날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어요. 제가 선생님에게 오지 못한 동안 그런 느낌이었어요. 올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두 손으로 감싸서 나를 들어올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침묵) 그런데 아세요? 그 새가 날지 못하는 이유는 온 몸에 검은 타르가 끈적끈적하게 묻어 있어서 그래요. 내 몸에 끔찍한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과연 그것을 씻어줄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씻어주신다고 해도 내가 다시 날 수 있을까요? 너무 늦은 게 아닐까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게는 복잡한 감정이 일어났다. A의 심리적 현실이 어떤지 이해할 수 있었다. A는 이기적인 세상에서 피해를 입은 한 마리 여린 새이고, 안간힘을 다해도 날 수 없는 상태로 오로지 치료자인 나의 도움 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도움도 자신을 살리는데 충분하지 못할 것이라 느껴서 절망적인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이를 확장해 A에게 돌려준다고 해도 A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 또한 타르 묻은 새처럼 꼼짝할 수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1-2년 전이라면, 나는 역전이 감정을 통해 A의 마음을 더 세심하게 이해하여 “A씨가 얼마나 절망적이고 처참한 마음인지 제 마음에 느껴지네요. 저에게 오지 않은 동안 제가 죽어가는 A씨를 내버려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셨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새의 몸에 묻은 검고 끈적끈적한 더러운 타르는 A씨가 두려워하는 저의 무관심, 저의 비난인지도 모르겠군요. 저의 무관심과 비난이 두려워 A씨는 꼼짝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해석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A는 분명 이해받았다는 기분이 들어 내 해석을 수긍하며 검고 더러운 타르에 대해 다양한 연상을 이어갔을지도 모르겠다.

4년간 A의 분석을 통해, 이런 전개가 A의 저항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기존의 심리적 현실을 더욱 공고히 만드는데 이용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해석을 할 수 없었다. 많은 생각이 스쳐간 후, 뭔가가 달라지기 위해서는A의 저항에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마음인지 알 것 같습니다. 더구나 검고 더럽고 끈적끈적한 타르가 몸에 묻어있다는 비유는 A씨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정말 잘 이해하게 해주는 표현인 거 같아요. (잠깐의 침묵 후에 따뜻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그런데 A씨는 그 더러운 것이 세상에서 묻혀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가요?”

A의 눈빛이 잠깐 흔들리고 나서, A는 “저는 그렇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랬군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새는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고 원망할 수 밖에 없었겠어요”라고 했다. 지금은 저항을 다루기에 적절한 때가 아닌 걸까? A가 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A의 감정에 좀더 다가가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A씨에게 그런 더럽고 끈적끈적한 것을 묻힌 세상 사람들에 대한 A씨의 마음을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A는 내가 묻는 의도를 파악한 듯 했다. 이전처럼 술술 이야기하지못하고 중간중간 자신의 말의 진위를 스스로 가려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글쎄요. 지금까지 엄마나 아빠가 나를 통제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엄마는 자기 기준에 내가 맞지 않으면 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비난했어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정말 엄마, 아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인지. 내가 엄마, 아빠 탓을 함으로써 내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 같기는 해요.” A는 나의 의도를 파악하고 마지못해 자신을 성찰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녀가 사용한 “회피”라는 단어는 저항을 다루는데 매우 소중한 재료이다! 

나는 A의 마음 속에서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기를 침묵 중에 기다렸다. A는 시선을 바닥에 두고 한참 있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A에게 이렇게 말했다. “A씨가 자신의 문제를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말이 저는 많이 공감되요. 이렇게 며칠씩 치료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피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잠시 침묵)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타르가 A씨가 피하고 싶어하는 그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A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내 해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사실 저도 제가 다른 사람 탓을 하면서 내 문제를 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 정도의 해석으로 A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환자의 서사에서 나타나는 저항에 초점을 맞출 때, 해석은 환자 마음에 이질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이질적인 해석은 환자가 바로 튕겨내게 되므로, 모든 맥락을 고려하여 점차적으로 접근해야한다. 환자의 서사를 경청하고 우선 공감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이질적인 해석을 하기 전에는 환자가 거부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역설적으로 저항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이것은 제 생각이고 A씨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을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는데, 저는 이러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A씨 생각에는 어떤 것 같으세요?” 분석가의 말을 거부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에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분석가의 말을 듣게 되고 그것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조금 더 많아진다. 또는 “혹시 제 말이 A씨에게 지적처럼 들릴 수도 있겠는데, 제 뜻은 A씨를 지적하려고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 같아서 꼭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해요.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요?” 라는 방식으로 환자가 이질적인 해석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분석가가 이질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듣기 때문에 충격을 완충하는 효과가 있다.

내가 A에게 했던 말- “그런데 A씨는 그 더러운 것이 세상에서 묻혀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가요?” -에서 흥미로운 것은 환자의 서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속의 저항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를 세포막에 비유하자면, 이런 해석에는 마음의 막의 수용체와 일치하는 요소가 있기때문에 수용체 문이 보다 쉽게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세포 내로 들어가서 수용체가 보다 이질적인 해석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점차 변화시킬 것이다. 이렇게 환자가 사용한 서사의 틀을 되도록 깨지않고 저항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을 확장할 수 있다면 효과적으로 환자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다.

나와 A는 남은 분석시간동안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주고 환영해주기를 바라는 소망에 대해 더 이야기했다. 그녀에게 파랑새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환영받고, 사랑받는 새” 였다. 나와 사람들로부터 환영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내가 자기를 포기해버릴 것 같다고 했다. A가 주변사람들과 치료관계에서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판타지를 붙들고 치료관계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학-피학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 해석이 A의 마음에 닿기 위해서는 더 작업이 필요했다.

나는 다음날 A가 또 결석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오지 않았다. 결석 후 다음 세션에서, A는 아버지와 친구가 자기와의 약속을 우선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거절감을 느끼게 하는지 울먹이면서 토로했다. "제가 경계선 성격장애인 거 아시쟎아요. 그게 얼마나 거절에 민감한지…. 다른 사람들이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나는 계속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몰라요. 내가 거절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몰라줘요.” 나는 그녀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A가 지난 세션에서 나에게 거절감을 느꼈고,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내가 알아줬으면 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동질적 해석을 한다면 A에게 만족스럽겠지만 그녀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이질적이지만 변화를 일으키는 해석이 A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은 어떤 것일까? A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듣고 그녀의 울분이 잦아들어 침묵에 이르렀을 때 나는 말문을 열었다. “A가 사람들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을 잘 알아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거절당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어요. 최소한 가족들, 친한 친구, 또 저에게는 최우선이 되고 싶은 마음이지요. 그것마저도 거절당할 때, 당신은 화가 나고 소리치고 싶지만, 모든 게 차단되어 있는 느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네요. (잠시 멈추어서, A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나의 다음 말에 더 집중하도록 한다.) 그런데, A씨는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A에게 이질적인 질문을 할 것이라는 암시를 하여 준비시킨 후, 보다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 공을 들여 진지하게) 당신이 반복해서 결석할 때, 그것이 저에게도 거절감을 느끼게 하고, 당신이 저와의 치료 약속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리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거절감을 느낄 때, 사람들이 당신과의 선약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 느끼는 상처와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시는데, 왜 저와의 치료 약속에 대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건지 궁금해요.” 나는 그녀의 고통에 대해 중립적으로 공감했다.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에 명백하게 지속되고 있지만 그녀가 부정하고 있는 부분을 제시하고 탐색했다. A는 당황했다. 자기를 방어하고 싶은 마음과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범벅이 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Ms. A는 자신의 거짓과 가식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를 사랑해달라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도록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도 내 감정만 생각하고 싶어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어요. 나의 끝없는 외로움과 공허함이 나를 미치게 만들어요.” A의 성찰이 전보다 좀더 진정성있게 느껴졌다. 나는 A에게 더 이질적인 해석도 그녀의 마음에 들일 수 있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어나갔다. “A가 자신의 모습을 타르 범벅이 돼 날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파랑새로 묘사했었지요? 제가 느끼기에는, 사람들의 사랑에 만족을 못하고 의심하는 파랑새가 스스로 타르를 묻히고 사람들을 테스트하는 것 같아요.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은 그 타르를 제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그 타르가 당신을 심각하게 해칠 수도 있는데도요” 라고 말했다. 그녀의 고통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녀의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지 못하고 투사하는 방어와 그 방어의 탐색을 가로막는 자신의 저항 때문이라는 것을 해석했다.

여기에서 강조할 점은 이질적이면서도 환자의 마음에 잘 닿을 수 있는 해석에서 기법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금-여기, 분석가와 환자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전이)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가 인식하는 대상관계가 분석가와의 관계에서 역전되는 상호작용을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기법적으로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A가 인식하는 대상관계는 자신은 거절당하고 소외당하는 피해자이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에게 상처를 안기는 가해자이다. 그런데 나와의 관계에서 오히려 A가 나를 거절하고 고통을 주는 가해자가 되는 역전의 순간을 A에게 보여주었다. 얼마 후 A는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거절감도 느낀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처음으로 선생님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전까지는 선생님은 그냥 있는 것, 마치 AI 인공지능 같은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라고 이때의 기분을 설명했다.

그 세션 이후로 A는 8개월 동안 무단결석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결석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이 며칠 동안의 작업으로만 결정적인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A의 서사에서 저항에 초점을 맞추어 경청하고 이해하며 돌려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A의 서사를 들을 때마다 “서사적 진실”이라는 강력한 표어에 압도되어 있었다. 그래서 저항을 염두에 둘 생각을 못했고, 저항은 다른 맥락에서만 다루었던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룰 주제에서 벗어나기에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 세션 이후 수개월에 걸쳐 A에게 실제적인 큰 변화가 일어났다.

위의 증례의 한 장면을 통해서, 어떻게 환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해석을 하는가에 대한 두가지 다른 관점을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동질적인 서사적 해석으로 환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서사는 주로 대인관계 측면으로 구성되고(Gedo 1997), 감정을 부각시키고, 환자의 마음에 동질적이다. 서사적 해석이 환자의 마음에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것이 환자를 만족시키기 때문일 것이다(Spence 1982). 서사의 확장과 새로운 서사의 창조가 정신분석의 목표라고 한다면 환자를 만족시키는 것이 정신분석의 목표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정신분석은 환자를 만족시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서사를 통해 환자의 관점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서사를 통해 환자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도록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환자를 만족시키지 않는 서사는 일단 환자에게 채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 갈등은 서사를 통해 잘 표현할 수가 없다. 서사는 대인관계 측면으로 구성되는 특징이 있다고 했는데, 대개는 환자의 내적 갈등이 외부로 투사되어 표현되기 마련이다. A의 서사에서 A가 더러운 타르가 세상에서 묻혀온 것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두번째는 이질적이지만 변화를 일으키는 해석이다. 이것을 저항에 초점을 맞춘 서사적 해석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프로이드가 중시했던 저항에 대한 끈질긴 분석이 어떻게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다. 나는 정신분석가들이 환자의 서사를 경청하면서 반드시 저항의 측면을 염두에 둘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환자의 저항이 치료과정을 방해하는 것이 너무 공고해지기 전에 저항에 초점을 맞추어 서사적 해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이에 대해 부쉬(2014)는 정신분석가들이 프로이드의 저항과 철저작업에 대한 관점을 잃지 않기를 염원하면서, 저항분석이 철적작업의 핵심이며 이를 통해 지속되는 견고한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어떻게 환자가 저항 분석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에 닿을 수 있는가가 정신분석 기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환자의 서사는 환자의 심리적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정신분석가의 해석이 환자의 심리적 현실을 확장하는 것을 부추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환자의 서사를 경청하여 그의 심리적 현실을 충분히 이해한 이후에는, 자신의 심리적 현실을 유지하려는 환자의 저항과 맞서야 한다. 환자의 서사에서 이용되는 저항을 깨닫고 구체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는 환자의 서사를 구조이론에 대입하여, 이른바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환자의 욕구와 두려움, 내적 갈등의 구조, 방어체계등의 포괄적 이해가 있어야 환자의 서사를 관통하여 바라볼 수 있다. 그리하여 환자가 사용한 서사적 틀을 이용하여 환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면서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해석을 할 수 있다.

해석학적 정신분석가들은 새로운 서사의 창조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말그대로 새롭기만 하면 모두가 다 진실을 담고 있다는 믿음은 쉐이퍼(2015)의 말을 빌리자면 “무분별하게 서사를 사용”하게 하고 “이론적, 기법적 부작용”을 낳게 된다. 쉐이퍼가 이 말을 서사적 해석을 분별력있게 사용하자는 의미에서 한 것은 아니고, 그런 우려도 있지만 자신은 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에서 한 것이지만 말이다. 나는 새로운 서사의 창조가 정신분석의 근본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정신분석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따진다면 또 다시 거대한 논쟁이 시작되겠지만, 내가 말하는 정신분석의 근본은 프로이드의 구조이론을 토대로 한 방어와 저항 분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맺음말

나는 해석학적 정신분석가들이 새로운 서사의 창조, 환자와 함께 창조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에 궁극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환자와 함께 창조하는 새로운 서사는 환자가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알고 싶지 않았던 서사를 창조할 수 있도록 정신분석가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는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을 저항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를 지키려고 방어한다. 비욘(1962)은 분석가의 해석은 환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것이라고 했고, 옥덴(2004)은 꿈꾸지 못하는 것을 꿈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분석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분석해야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환자의 저항은 구조이론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명확하게 보여진다. 환자와 함께 창조하는 새로운 서사는 구조이론에 바탕을 두고 환자의 서사에 자리한 저항을 발견하여 이를 환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서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Bion W (1962) Learning from experience, chapter twenty-six, London: Karnac.

 

Blass R (2015) Psychoanalytic Theories as Effects to Grasp the True (not Fictional) Nature of Human Reality: Commentary on Greenberg. Journal of the 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 (63)(1):47-63

 

Busch F (2014) Chapter 9, Working through and resistance analysis. In Creating a Psychoanalytic Mind: A psychoanalytic method and theory, New York: Routledge

 

Freud S (1936) Analysis terminal and interminable.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ume XXIII: p238-240

 

Freud S (1940) An outline of psycho-analysis.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ume XXIII: p179

 

Gedo JE (1997) Reflections on metapsychology, theoretical coherence, hermeneutics and biology. Journal of 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 45:779-806

 

Gray P (1982) “Developmental lag” in the evolution of technique for psychoanalysis of neurotic conflict, Journal of the 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 (30):621-655

 

Greenberg J (2015) Therapeutic action and the analyst’s responsibility, Journal of the 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 (63)(1):15-32

 

Ogden TH (2004) This art of psychoanalysis; Dreaming undreamt dreams and interrupted cries.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85):857-877

 

Spence DP (1982) Narrative truth and Historical truth: Meaning and interpretation in psychoanalysis, New York: W. W. Norton

 

Wallerstein RS (1982) Foreword. In Spence DP, Narrative truth and Historical Truth, New York: W. W. Norton, p10-14

 

Schafer R (2005) Conflict: Conceptualization, Practice, Problems, Psychoanalytic Quarterly, (74):47-63

Comments


Psychoanalysis Notes

© 2022 by Academy of Contemporary Psychoanalysis

bottom of page